九萬長天擧頭難 (구만리 장천 높은 하늘에 머리하나 들기 어렵고,, 三千地闊未足敍 (삼천리 강산 넓은 땅에 다리 하나 뻗을 곳이 없구나) 문전걸식을 하고 남의 집 아궁이에서 엄동설한의 긴긴밤을 넘기며 잠을 청했던 방랑시인, 천재시인, 걸인
시인 金炳淵(김병연) 삿갓은 1863년 3월 29일 전라도 화순군 동복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루 편력하면서 몸으로 체험한 인생을 시로 승화했던 불우한 시성이기도 하여, 가히 杜甫와도 비견되기도 한다.
함박눈이 펄펄 나리는 들판을 걸어가면서 "발밑에는 삼동의 눈이 깔렸는데, 내 몸에는 여름철의 베옷이 걸쳐졌구나"(足下三冬雪 身邊六月麻) "하늘에서 훨훨 날아오는 눈송이는 춘삼월에 날아다니는 나비와 같고, 그 눈을 밟고 걸어가니 발 밑에서 뽀드득나는 소리는 오뉴월 논두렁에서 우는 맹꽁이 소리와 같구나" 飛來片片三月蝶 踏去聲聲六月蛙
김삿갓의 시는 재치와 유머가 번뜩인다. 성순이의 김삿갓 게시물이 계기가 되어 천천히 그의 시를 涉獵해 보련다. 力拔山 氣槪의 項羽 ㅡ 남산과 북산의 산신령이 말하기를 항우가 살던 시절에는 山이 되기도 힘들다. ㅡ 바른손으로 뽑고 왼손으로 집어서 공중에 던지니 가끔 평지에는 여기저기 새로운 산이 많이 생긴다. ㅡ
항우가 죽은 뒤 그런 장사가 다시 없으니 어느 누가 산을 뽑아 공중에 던질까? 몸은 쭈글 쭈글 노구가 될지언정 항우의 역발산 기개를 갖고 남아있는 생명의 불꽃을 다 태우고 싶다. 김삿갓이 어느 마을 환갑잔치집에 이르러 음식을 얻어 먹으려 할 때, 주인이 운자(韻字)를 띄어주며 壽宴詩를 지으란다. 밥 값을 하라는 얘기다.
심사가 틀린 김삿갓은 시를 지었는데, 허기는 채워야 하긴 하겠고.... 人到人家不待人 사람이 사람의 집에 왔는데 대접을 하지 않으니 主人人事難爲人 이 집 주인의 인사는 사람되기 어렵구나 彼座老人不似人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같지 않게 생겼으니 疑是天上降眞仙 아마도 천상에서 내려온 신선인가 보다. 膝下七子皆盜賊 슬하의 7형제는 모두 도둑이구나
偸得碧王獻壽筵 복숭아 훔쳐다가 환갑잔치 빛내니 何日何時降仙神 어느 날 어느 시에 신선이 내려왔던가 竊取天桃善養親 불로 장생의 천도 복숭아를 훔쳐다 잘 봉양하는구나. 수연 잔칫집에서 풍자와 해학의 수연시를 지음으로 김삼갓은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김삿갓의 情人은 '가련'이라는 처녀였다. 이 처녀와 첫날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毛深內闊(모심내활) 必過他人(필과타인) 털이 깊게 까지 나고 구멍이 넓으니 반드시 다른 사람이 지나 갔구나?
강물에 배 지난 자국같은 걸 뭘 그렇게 따지나 싶다. 사람의 욕심이란? 김삿갓도 여늬 인간과 같았다.
이에 가련이는 後園黃栗不蜂折(후원황률불봉절) 溪邊楊柳不雨長(게변양류불우장) 뒷동산의 누런 밤은 벌이 쏘지 않아도 저절로 벌어지고, 시냇가의 수양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저절로 자란다. 라고 댓시로 김삿갓을 꼼짝 못하게 하였다.